떠날수록 가까워지는 마음속 고향 단강에 살며 집 하나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나이 차이가 이삼십 년이 넘어도 마음으론 친구처럼 가까웠던 마을 어른들과
흙과 나무와 돌을 모아 쉬엄쉬엄 집을 지었습니다.
작고 허름한 집이지요.
작고 허름하긴 해도 기도실도 있고 변소도 있어 있을 건 다 있는 집이었습니다.
나중에 이현주 목사님을 통해 '인우재'(隣愚齋)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어리석음과 가까워지는 집'으로 새깁니다.



모든 계절이 다 좋았지만, 인우재의 겨울은 특별했습니다.
화로 때문이었습니다.
장작을 때고 나면 아궁이 속에는 검붉은 숯불이 이글거리며 남습니다.
특히 참나무 숯불이 좋았습니다.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끝까지 자기 빛깔과 자세를 지켰지요.
드물긴 했지만 대추나무 숯불은 빛깔이 독특했고요.
파르스름한 신비한 빛을 뿜어냈답니다.
숯불을 화로에 담아 방안에 들이면 방안은 이내 온기가 가득 퍼지곤 했습니다.
이웃 청년이 전해준, 붉은 빛이 잘 익은 질화로였습니다.
때때로 인우재를 찾는 벗들과 마주앉아 화로 속에 고구마와 감자를 집어넣고 차를 끓이면 바람이
문풍지를 흔들 뿐 시간은 저만치 물러나곤 했습니다.


'얘기마을'은 '인우재'로 오르는 오솔길입니다.
정겨운 이웃들이 살고 있는 고샅길을 지나,
기대하는 것 없이 모두를 기다리는 품 넓은 느티나무 모퉁이를 돌아,
감나무와 밤나무 그늘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인우재,
세상의 먼지를 털며 본연의 어수룩함을 향해 오르는 오솔길입니다.
지도에도 없는 '얘기마을'이 인우재에서 누렸던 화롯가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도 반가이 맞아주는 이가 있는,
무슨 생뚱한 이야기를 하여도 귀 기울여 눈물과 웃음을 헤아리는,
어느덧 서로가 고맙고 소중한 그런 마을 말입니다.


문 창호지 하나를 두고 세상이 팍팍하고 사나울수록
화롯불은 그만큼 따뜻하겠지요.
화로 속 고구마와 감자가 잘 익어
구수한 냄새 찬바람에 퍼질 때면
긴 긴 겨울밤 배고픈 산짐승들도 머뭇머뭇 찾아들 테고
뒤뜰 장꽝의 항아리
서너 겹 얼음이 둘린 동치미도 잘 익었을 테니
마음의 화롯가,
언제라도 마음을 맞대고
삶의 무게를 잊는.

-한희철